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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닉쿤(Nick Khun) 과 가족들 이모조모!

by JONYTHAI JONY JUNG 2010. 2. 17.
  • 정말 훈훈한 가족인가봐요 저렇게 행사장에 온가족이 응원하라 나와준 걸 보면. 저 비주얼에 저런 고운 성격 심지어 끈끈한 가족애와 부유함까지 갖추다니(쿤이 아버지 보기엔 평범한 아저씨 같지만 태국 내에서 100대 안에 드는 재력가라고 함. 무슨 제약회사 대표라던데) 아무래도 쿤이는 전생에 나라 구한 걸로도 모자라 지구라도 구한 영웅이었던 모양ㄷㄷㄷ 저런 남자는 대체 어떤 여자가 데려갈까? 암튼 저 팬미팅 현장 나도 무진장 가고 싶었었는데ㅠ.ㅠ

     

     

     

     

     

     

     

     

     

     

     

     

     

     

     

     

                                          아들과 동생을 위해 자리를 함께 해준 닉쿤의 아버지와 형, 가족애가 참 두터운 집안인가봐요

     

                                              누이들도 예쁘네요

     

                                            이렇게 밝은 야외에서보니 쿤이 완전 서양인형 같다! 저 새하얀 피부 봐라!

     

     

     

     

                                                이건 쿤이 형! 선글라스를 끼니까 쿤이와 누가 누군지 구분이 잘... 역시 형제는 닮는 법인 모양

     

     

     

     

                                            쿤이가 아무래도 엄마 쪽을 더 닮은 듯?

     

     

     

     

     

     

     

     

 

여동생이 태국 슈퍼모델 대회에 나갔다는군요.

 

소유진과 닮은 듯.

 

 

얘는 막내 여동생. 혼혈이라 그런지 눈빛이 야릇.

 

어떤 해외 싸이트에서 발견한 인터뷰 번역 한거랍니다.
너무 길어서 1부까지 밖에 못했어요
태국어 -> 영어 -> 한국어로 해석 ㄱㄱ
내용도 알차고 재밌어요!




"....저는 미국에서 태어났어요. 2살때 다시 태국으로돌아왔고요. 옛날 집은 Charansanitwong 37 (방콕지방) 이었어요. 저는 유치원부터 Grade 4까지 "Tepkanchana" 학교를 다녔어요. 제 기억에는 전 항상 학교를 늦게 갔던 것 같아요. 저와 여동생, 그리고 형이 학교를 들어갔을 때는 복도에 사람이 없었어요. 다들 수업에 들어간 상태였으니까요. 맨날 늦잠을 자서 지각을 했던거죠. 저희 아버지도 저희를 깨우는데 포기하셨어요. 그냥 지각하면 선생님들이 저희를 혼내게 하셨는데, 사실 그게 저희한테 통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어렸을때, 전 통통했어요. 제가 기억하는 것 중 하나는, 매년 Colgate(치약회사)가 학교에 와서 최우수 건치상을 주곤 했는데, 제가 매년 그걸 받았어요. 그리고 부상은 치약 한줄이었고요. 제가 Grade 4였을 때 저희는 Putthanmonthon(방콕근교)로 이사갔어요. 그래서 전학을 가야했죠. 거기서의 학교 생활은 재밌었고, 도시 친구들과는 다른 아이들이었어요. 맨날 대낮에 놀러 나가서 그런지 그때 새까맣게 타기도 했죠."





Q: 부모님이 어떻게 키우셨나요?
"제가 다른 친구들이 다 갖고 있는 장난감을 사달라고 아버지한테 말하면, 아버지는 그게 정말로 필요한 것인지 되물으셨어요. 한 번은 제가 장난감 코너에서 장난감을 들어서 아버지께 보여드렸는데, 가격표도 보지 않으시고 비싸다면서 바로 내려놓으라고 하셨어요. 아버지는 제가 장난감을 사도 며칠 사이 금방 질려 버린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에 사주지 않으셨던 거에요. 제가 원하는 것을 갖지 못했을 때는 하루종일 삐져서 아버지에게 말도 붙이지 않았어요"


"아버지는 저를 에메랄드 템플 근처에 사격장에 종종 데려가주시곤 했어요. 그리고 아버지는 제가 사격을 잘하면, 자난감 총을 사주시겠다고 말씀하셨죠. 근데 그것도 비교적 싼 장난감 가게에서 산거였어요. 아버지 같은 경우, 항상 무엇을 주는 대신 다른 것과 교환하는 것을 원하셨어요. 아버지는 제가 무얼 갖기 위해서는 제 자신이 스스로 행동해야 된다는 가르치려고 하셨던거죠.



"아버지는 제가 보충 수업을 듣기를 원하셨어요. 그래서 저는 항상 주말에 자유 시간이 없었어요. 제가 왜 주말에 공부를 해야 하냐고 불만을 터뜨렸더니, 아버지는 제가 물으셨어요. 어느때 자유롭고 싶니? 주말, 아니면 방학? 만약 주말이라면 저는 집에 있거나 배드민턴 하는 것이 허락되었어요. 하지만 방학을 택한다면 제가 원하는 곳에 가도 좋다고 아버지는 말씀하셨어요. 그게 남쪽이든, 서쪽이든, 아님 그게 해외가 되든. 그래서 아버지에게 이런 제안을 받았을 때 주말을 포기하고 방학을 기다렸어요."


Q: 어머니는 어떠셨나요?
"엄마는 항상 아버지 편이셨어요. 다만 조금 더 다정하셨죠. 제가 무얼 사달라고 하면 사주시고. 저희 할머니가 굉장히 엄하세요. 제가 8살일때, 미국에 계신 할머니댁에 갔어요. 할머니는 저와 제 여동생, 그리고 형한테 공책을 하나씩 주시고,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 에티켓과 매너를 가르쳐주셨어요. 심지어 어떻게 바른 말을 해야 하는지까지 가르쳐주셨어요, 은어가 아닌. 만약 저희가 틀린 말이나 나쁜 말을 했다면 항상 고쳐주셨어요. 만약 저희가 잘못된 행동을 하면 저희 공책에 그것을 적으셨어요. 그리고 태국에 돌아가기 전에 누가 가장 적은 벌점을 받았나에 따라서 상으로 사탕을 주시곤 했어요. 그래서 저희는 항상 각자 공책을 들고 다니면서 우리 중 누가 말을 잘못하면 항상 서로 벌점을 매기려고 하곤했어요."



Q: 어렸을 때 말썽을 많이 부렸나요?
"네, 사실 조금 말썽꾸러기 였어요. 소위  '노는 아이' 그룹과 함께 다녀서 수업 시간에 집중도 제대로 하지 않았죠. 전 YUKI CARDS, 다마고치, 디지몬 만화를 좋아했어요. 수업시간에 끊임 없이 떠들어서 결국 선생님께서 절 여학생 옆으로 자리를 옮기게 하셨죠. 여학생들이랑 있을 때 성적이 더 좋았던 것 같아요."



"예전에 아버지께 500바트씩 받아서 형과 다마고찌를 하기도 했어요. 아버지는 그러면 안된다고 말씀하셨고, 항상 그걸 압수하셨어요. 전 죄책감을 느끼고 슬프기도 했지만, 아버지는 절 용서하셨어요. 아버지는 제가 무언갈 원할때는 왜 내가 그것이 필요하고 가질 자격이 있는지를 설명하라고 하셨어요."



"제가 어렸을땐, 제 장난감 총을 굉장히 좋아했어요. 어느날 아버지가 여동생을 데리러 나가셨을때, 저는 형한테 우리가 집을 지켜야 된다고 말했어요. 전 장난감 총을 가지고 집을 보호하기 위해서 돌아다녔죠. 아버지가 돌아왔을때, 장난감 총을 꺼내서 혼날까봐 그 자리에 두고 바로 위층으로 도망갔어요. 그때 제 여동생이 그걸 주워서 형 얼굴을 향해 쏜거에요. 다행이도 형은 얼굴을 가렸지만, 아버지는 굉장히 화를 내시면서 장난감 총을 집 울타리 밖으로 던져버리셨어요. 아버지는 주의를 줬음에도 불구하고 조심하지 않았다고 저를 혼내셨어요. 그때 여동생이 정말 밉고 화가 났어요." (이때 쿤은 인터뷰어를 향해 화난 얼굴을 지었다)


Q: 뉴질랜드에서 공부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친지분이 거기 계세요. 그때 그분이 가족들에게 창립 150주년이 지난 카톨릭 학교에 대해 말씀하셨나봐요. 엄격한 교육(규율)학교였죠. 학생들은 매일 아침 수영하고 조깅을 해야 했어요. 어머니는 학교를 둘러보시고 형을 먼저 보내셨어요. 그리고 그 후에 저를 보내셨죠"



"한 1년반후, 형은 공부하러 미국으로 유학을 갔어요. 전 혼자 남겨져서 너무 외로웠어요. 엄마한테 울면서 전화해서 돌아가면 안되냐고 말하기도 했어요. 엄마는 절 설득하고 회유하셨어요. 그 후에는 기분이 한결 나아졌어요. 그곳에서 음악 감상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피아노를 치곤 하면서 지낼 수 있었어요.



Q: 거기 친구들은 어땠나요?
"인종차별도 있긴 했어요. 동양인들은 볶음밥을 좋아하잖아요. 우리가 그들을 지나쳐 갈때, 그들이 우리를 "볶음밥"이라고 놀리기도 했어요. 농담처럼 들리기도 했지만 사실 내려다 보는 거였죠. 가끔 저희 얼굴을 가르키면서, "넌 동양인이야"라고 말하기도 했어요. 그리고 또 일부러 액센트를 섞어 쓰며 놀리기도 했죠. 기분이 많이 나빴죠."


"기숙학교에서의 생활은 참을 만 했어요. 전 조용하고 나서는 타입이 아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친구들이 절 좋아했어요. 그리고 전 선배들을 존중했어요, 거기서는 그런게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처음에는 영어 수업을 받아야 했어요. 그러다 제가 대화를 할 수 있을 때는 수학, 과학, 그리고 일본어를 배웠죠. 전 역사 수업을 받기를 원했는데, 용어가 복잡하다고 선생님들이 못 듣게 하더라고요. 전 대부분이 2년을 걸쳐 끝내는 코스를 1년 이내에 끝마쳤어요. 전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하는 타입은 아니었어요. 제 생각에는 그냥 머리가 좋은 것 같아요. 남들보다 기억력이 좋아요. 제가 너무 놀지만 않았다면 더 좋은 성적을 받았겠죠."


Q: 공부 말고 다른 활동은 하지 않았나요?
"저희 기숙사팀의 배드민턴 대표로 활동했어요. 아버지가 항상 저를 배드민턴 코트에 데리고 나가셨기 때문에 잘하는 편이었죠. 주말마다 코치와 2시간씩 연습을 하곤 했어요. 제가 하는 활동의 대다수는 아버지의 권유로 시작됐어요. 예를 들어 미술이나 피아노 같은. 사실 당시에는 그게 너무 싫었는데, 뉴질랜드에서 익숙해졌어요. 배드민턴 경기를 이겨서 운동복에 운동선수(athelete) 태그를 붙일 수 있어어요. 제 학년에서는 제가 유일하게 그 셔츠를 입을 수 있었어요.
"


"뉴질랜드에서 1년반동안 영어를 공부한 후, 영어가 더 유창해졌어요. 미국에 사는 이모가 저희 어머니께 방이 비었다고 전화를 하셨어요. 어머니는 저를 형과 함께 미국에서 공부하도록 유학보내셨죠. 그런데 제가 유학을 간 얼마 후, 형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기숙사로 들어갔어요. 그래서 전 다시 혼자 남겨졌죠."





그래서 다시 혼자가 된건가요?

"네, 이모네집은 캘리포니아 근교에 있었어요. 그래서 절 방해할만한 유흥가 같은 게 없었어요. 저는 제가 탈선하는 것을 방지하게 위해 부모님이 계획하신거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그때 Grade 9으로 들어갔어요. 처음에는 모범생이었어요. 학점도 3.8-3.9 사이였어요. 일찍 자라는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들어서 그런가봐요(웃음).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허겁지겁 숙제를 마치고 잠깐 컴퓨터를 했어요. 그런 다음 샤워를 하고 9시 반이면 잠자리에 들었죠.
"

"제가 Grade 10이 됐을때, 친구가 많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방과후 여전히 숙제를 하긴 했지만, 일찍 자지는 않았어요. 일단 스타벅스에 가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었죠. 11시쯤 되야 자러 갔던 것 같아요. 학점은 3.7까지 떨어졌어요. 그 후 전 집과 가까운 새로 생긴 학교로 전학가게 되었어요. 전학교는 조금 낙후된 지역에 있던 터라, 가족들이 제 안전에 대해 걱정을 하셔서 그랬어요. 그래서 더 크고 좋은 학교로 옮기게 되었죠.

"새로운 학교에서는 아무도 몰랐기 때문에 공부만 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또 친구가 생겼고, 그 친구들이랑 함께 다니고 배드민턴도 치고 하다 보니 학점이 3.4까지 떨어졌어요. 그 주변에 pub(술집)이 없어서 좋았어요. 술을 마시러 가거나 하진 않았어요. 다만 당구를 치러가는게 다였어요."


Q: 학점이 좋은데, 어떻게 관리 했나요?


"예전에는 학점이 3.5 밑으로 내려가면 낮은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미국에 있을때는 보충 수업이 없었어요. 저 혼자 공부를 해야 됐던거죠. 공부는 집에 오자 마자 숙제를 하고 책을 읽는 방법을 택했어요. 숙제를 좀 두서없이 닥치는 대로 하기도 했어요. 예를 들어 수학 숙제에 알려진 동화 같은거를 쓰고 그 안에 수학 공식 몇개를 집어 넣는 다거나 하는 식으로. 선생님들을 그걸 잘 눈치 채지 못하신것 같아요. 그래도 한번도 레포트나 시험에서 컨닝을 해본적은 없어요. (주:다만창작을할뿐.ㅋㅋ)



Q: 학교에서는 인기가 많았나요?
"학교에서 알려지긴 했었어요. 다른 학생들이 제가 옷 입는 방식대로 따라 입기도 했어요. 예를 들어 큰 티셔츠를 입던 애들도 제가 입은 것처럼 스타일을 바꾸기도 했어요. 저를 좋아하는 여학생들도 있었어요. 배드민턴이 끝나고, 몇몇 여학생들이 와서 이름이랑 어디서 왔는지를 물어보곤 했어요. 제 친구들이 여자애들을 소개시켜주기도 하고, 제 번호를 주기도 했어요. 저도 그들과 대화를 하긴 했는데 오래가진 않더라고요.



그때만해도 그렇게 누구를 사귀고 싶다는 생각이 없었어죠. 그냥 자유분방한 상태가 좋았죠. 나가 놀기 좋아하고 파티에 가거나 마약을 하는 친구들에 비해 얌전한 편이었죠. 어느날 엑스터시를 하는 친구의 차를 타게 되었는데, 그는 엑스터시 한알을 15달러에 팔겠다고 말했어요. "아 정말? 그럼 나 먼저 집에다 데려다 줄래?" (웃음)라고 말했어요. 전 그런데 엮이는게 싫었어요. 잡히는 것도 무섭고. 그 후로 그 친구와는 거리를 두었죠.

Q: 공부외에, 다른 학생들처럼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나요?

"그러고 싶었죠. 제가 스타벅스를 자주 가서 거기서 일하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차가 없어서 너무 불편하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너무 어렸어요. 부모님은 제가 공부에 집중하기를 바라셨어요. 그것 말고는, 배드민턴을 정말 좋아했어요. 맨날 연습해야 했기 때문에 아르바이트할 시간은 없었죠. 제가 학교에서 2등이었어요. 1등은 다름 아닌 제 형이었고요. 형이 키가 저보다 컸기 때문에 이길 수가 없었어요. 하지만 복싱이었다면 제가 이겼죠. 제가 더 잘했으니까요. (웃음)"


Q: 어디에 가장 돈을 많이 썼나요?

"먹는 데요.. 전 옷사러 다니는 걸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요. 먹는건 좋아해요. 태국 음식점에 친구들을 데려가는 걸 좋아해요.. 리치스무디 쥬스를 사랑해요! 자주 가는 가게 점장님이 저를 보면 항상 웃으시면 리치 스무디를 시킬 건지 밀크 스무디를 시킬건지 물어보셨어요. 전 태국 음식을 정말 좋아해요! 돼지고기 볶음밥이나, pad tahi 와 sweet green 카레!"

Q: 먹는걸 좋아하는데, 하는건 어떤가요?

"간단한건 만들 수 있어요. 예를 들어 돼지고기오믈렛, 라면, 스파게티 같은. 그냥 닥치는 대로 집어 넣었어요. 어쩔 땐 먹을 만 했고, 다른 때에는 그렇지 않았죠."

Q: 누가 주로 밥을 해줬나요?
"처음에는 이모가 해주셨어요. 제대로 교육시키기 위해 몇몇개의 규율을 정해주셨죠. 하지만  나중에 나이가 더 드니까, 나가거나 친구들을 데리고 올때 미리 알려달라고 말씀하셨어요. 친구들한테 놀러오면 제 방 안에 있으라고 말했어요. 술을 마시더라도 시끄러운 음악은 못틀게."

Q: 서양 친구들은 당신을 어떻게 보았나요?

"별 다른 건 없었어요. 전 누굴 따라가거나 그러진 않았어요. 모든 것에 대해 제 의견을 말하곤 했죠. 참견하고 싶어서 그런건 아니었어요. 그냥 제가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요. 누가 절 이용하거나 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거든요. 미국에선, 자기가 생각하는 것을 말하라고 가르쳐요. 하지만 태국에서는 그 반대죠. 태국에서는 항상 남을 배려하고 매너를 지켜야 해요.



"한국에서, 울컥 한적도 있어요. 저보다 2살이 많은 남자를 만난적이 있는데, 그 사람이 저한테 계속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거에요. "전 당신 아들이 아니에요. 강요하지 마세요"라고 했어요. 가끔 이렇게 강한 성격이 필요한 것 같아요."

Q: 어떻게 하다 비와 같은 회사에 들어가게 되었나요?
-1부 마침 - 2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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