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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LOVE & LIFE

조니정의 이야기.. 네델란드 암스테르담 (Amsterdam Strory 1)

by JONYTHAI JONY JUNG 2012. 4. 29.

 

(네델란드 암스테르담 헥포르트에서 )

 

 

1999년 내가 사랑하는 대한민국을 버리고 저 버리고 저~ 멀리  유럽에 " 네델랃드 암스테르담" 에서 새로운

 

내 인생을  시작하려고 했던 그떄 ...  그리고 네델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한국게 계신 어머니 에게 보낸 마지막 메세지!

 

 

 

엄마! 기달려 내가 꼮! 성공해서 한국갈꼐! 걱정하지마!  " 여기서 보살펴 주시는 부모님 같은분들이 계세요!  엄마 걱정하지말고.. 몸건강히 잘지내고 계세요!  ~ 쭙쭙!

 

우리 어머니는 돌아가시기전까지 내가 보낸 해외문자 메세지를  삭제하지  않고 고스란히 보관함에 보관하고 계셨다. 

 

우리 어머니 돌아가시기전까지 난 어머니 핸드폰으로 " 엄나 나 ! 돈떨어졌어! 돈붙여줘!   "  이걸 몸에 지니고 살았던것 같다 . 어머니가 무슨 은행도 아니고!  ㅎㅎ

 

 

아~ 엄마 너무 보고싶다~!!!   20대 아무것도 없는 시절에 난 할부로 구입한 티블론 스포츠카를 가지고 엄마가 계신 대전으로  갔다.  " 김여사님! 저 이만큼 컸습니다.. 보여주고 싶었던 나의 모습.! 이 아직도 생생하다!

 

여행 자유화가 되기전이다!  그래서 인지 인천공항에서는 매번 병무신고를 해야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언제쯤 내가 군대를 가나 하면서 조바심이 생기기도 하면서...

 

그리고 나의 미래는?  그러던중에 난 병무청에서 신체검사 날짜를 접수 받는다.

 

결국 난  ~ PS: 난 가기싫은 군대를 면제받았지만.... 우리 친형은 가고싶은 군대를 갔다.!

 

 

우리형은 모든것을 지원했다!

 

지원!! 군대를 너무나 가고싶어 했던 우리 친형!  그리고 너무나 가기 싫어 했던 난~ !!

 

 

어떻게 이 두형제가 이렇게 다를수 있을까?

 

어렸을  부터  쌍뚱이 같다며... 바가지머리에 사람들이 귀엽다며 만지던것이 엇그저꼐 같은데... 

 

키도 거의 비슷하고  하지만 자라면서 형과 나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형은 장남이라는 타이틀로 집안에서 항상 1위 보물중에 보물이였다.

 

우리형은 정말 머리가 좋아서 과학상자, 는 물론 학교 내에서도 Top 을 달리면서도...  

 

어렸을때 우리집에는 형이 받은 상장들로.. 집을 장식할 정도 였다! 

 

우리집에 보배는 우리 형이 였다.

 

지금 같은 심정으로 형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뿌듯하게 생각하는 감정이 있었다면...

 

당시!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예기 했다.!  " 너에 형은 저렇게 상장 받는데.. 넌 뭐했냐는 식으로 나를 무시했다!  그렇게 비교가 되가면서....  난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아니 꿈이 아닌 도전이라고 해야 할까?  

 

솔직히 아직까지도 나에 꿈이 뭔지 궁굼하다! 그냥 행복하게 사는거?

 

나의 20대 젊은 패기와 힘은 어디갔노? 

 

지금 나는 너무나 많은 행복에 겨워서 행복에 도를 넘어서 미친것 같다.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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