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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의 흔적 - 태국 아유타야 포로 수용소 1

by JONYTHAI JONY JUNG 2016. 6. 9.
광복 70주년, 끌려간 소녀들 버마전선에서 사라지다

데일리 모션영상 ▶http://www.dailymotion.com/video/k5BGEaejLXrtPoco4DD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 태국은, 동남아의 여느 후진국을 상징하는 국가가 되어 버렸다. [동남아 스럽다]거나 [태국 스럽다]는 선입견에 가려진 채 실제로 전후 태국은 극빈국가로 전락한 한국을 식량 쌀지원등으로 적극 지원하는 넉넉한 살림의 우방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경제 급성장을 이룬 한국은 태국을 전혀 우방국으로 여기지 않고 있는 듯 하다.



전세계적으로 태국쌀 (쟈스민 라이스 Jasmin rice ,ข้าวหอมมะลิ, 카우험마리)은 그 맛과 풍미가 대단하게 인식되고 있음에도. 우리 국민들은 이를 [안남미]라 칭하며 맛없는 쌀로 인식해 온지 오래다. 이는, 전후 구호 물품 형식의 저질 [안남미] 쌀이 대거 유입되어서 라고 한다.


정부미만 먹어 본 사람에게 햅쌀로 밥을 지어서 먹여 준다면 천국의 꿀맛이었을텐데... 구호품 [안남미]가 아닌 진짜 [카우험마리]로 된 볶음밥을 먹기 시작했다면...


태국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태국에 대한 우리의 부족한 인식 은 쌀 문제 만은 아니다.


세계 2차 대전 그리고 한국전쟁과 내밀한 관련이 있는 태국과 한국의 관계는 최근에 재 조명 되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도 내밀한 관련이 있다는 것인데, 이러한 점 마져도 [카우 험마리]가 맛없는 [안남미]로만 인식되고 있는 것 만큼이나 우리에겐 제대로 인식되고 있지 않다..

2차 세계대전 연합군 포로 수용소 조선인 간수 그리고 위안부,


지난 1984년 3월 12일 KBS 1TV 9뉴스 생중계를 통해 태국에서 생존해 있는 이산가족임이 확인된 노수복 할머니, 이후 같은 해 5월 한국으로 임시 입국하시고 눈물의 이산 가족 상봉을 이룬 할머니는, 한국의 여동생 노국향씨가 [우리 언니 맞네]라는 한국 말에, 태국 말로[차이]라고 답하신다. 이미 오랜 타향 살이로 조선말을 잃어 버리시고 태국 말을 쓰는 태국 사람이 되셨던 것이다. 노수복 할머니는 방송이후 위안부 관련 행사등에 증인으로 자주 나오시다, 2011년 태국에서 지병으로 사망하셨다.


2차 대전 당시, 1942년 21세 때 부산의 한 우물에서 빨래를 하던 중 끌려와 영문도 모른 채 동남아(싱가폴, 말레이시아) 등지의 일본군대 위안부로 3년여를 지옥같은 삶을 사셨을 게다. 당시 위안부들의 증언에 의하면 평일은 30여명 주말에는 50여명을 하루에 상대해야 했다고 한다.


연합군이 승리, 일본군의 패전으로 종지부를 찍은, 종전 직후에는 연합군 포로 수용소에서 연합군의 포로로 험난한 삶을 사셨을 조선인 위안부 처녀들... 다행히 노수복 할머니는 2차 대전 종전 후 포로 수용소에 갇히지 않으시고 도망나와 태국에 정착하신 모양이다.


이후에도 한국으로 귀국하지 않으시고 태국에서 40여년을 사시면서 한국 말도 잊어 버린 채 태국 사람으로 살아 오셨다.


사망 후에야 할머니의 유골은 고국땅에 묻히셨다. 종전 후 집으로 돌아가면, 일본군의 위안부로 살았던 추한 모습을 고국땅의 아버지에게 보여야 할 용기가 나지 않으셨다 한다.


노수복 할머니 처럼 동남아에서 일본군 위안부로 살다가 도망쳐 나온 조선 아가씨들이 있는가 하면, 패망한 일본군에의해 사살 되거나, 미쳐 피난하지 못하고 연합군의 포로수용소에 갇히는 신세로 전락한 조선위안부 여성들도 많다.


이때 태국에는 연합군의 일본군 포로 수용소가 아유타야에 있었는데 , 최근에 봉인 해제된 당시 문서에 일본군 관련 조선인 포로 여성(위안부) 500여명의 목록을 확인 할 수가 있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일제 침략을 받은 아시아 국가들이 일본을 여전히 적대시 하는 반면, 2차 세계대전의 침략의 소용돌이 중심에서 벗어났던(?) 태국은2016년 현재 일본의 우방국이 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일본 - 태국 - 한국 -버마 간의 겹겹이 쌓여 있는 내밀한 관계들에서 , 근대와 현대에 와서, 태국 과 한국은 차츰 상호 평가 절하되는 국가관이 형성되어 왔다.


반면에 일본-태국은 상당히 친밀한 우방국으로 자리 매김해 버렸다. 지하철을 탈 때 마다 보는 [지하철 건설 당시 재정적으로 큰 힘이되어준 일본 은행사에 감사를 표한다]는 감사팻말은 한국 사람임이 더욱 주눅들게 까지 한다. 


일본의 국가 지도자들의 우월한 국가 경영에 내심 존경심마져 든다.


이러한 주변 정세 속에서, 비참한 청년기를 보내고 난 후 마지막 생을 태국의 근대와 현대를 살다가 쓸쓸하게 돌아가신 노수복 할머니는 태국과 한국의 오늘의 초라한 양국 관계를 말해주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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