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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의 흔적 - 태국 아유타야 포로 수용소 3

by JONYTHAI JONY JUNG 2016. 6. 10.

 

[귀신처럼 사라져 버린 연합군의 아유타야 포로(일본군) 수용소]

 

2차대전 당시 일본군 관리하에 있었을, 연합군의 일본군 포로 수용소 는 현재 칸차나 부리의 탐무앙 포우 캠프에 관한 자료가 검색된다.


아유타야 역사 자료 사이트(http://www.routeyou.com/…/location/view/47558013/tha-mueang…)에 따르면, 2차 대전에서 패망했던 일본군 포로를 수용하던 연합군 관할 포로 수용소 였다. 1943년 부터 1945년 까지, 2차 대전 도중에는 주둔 일본군의 관할 하에서 연합군포로가 수용되어 칸차나부리 철도 건설에 동원되었다가 기근과 말라리아 고된 노무로 인한 심각한 중증 치료를 요하는 연합군 포로 환자들을 치료하는 수용소 였다고 기술되어 있다.

 

2차대전 종전 이후에는 참전 조선인등이 포로일본군 신세가 되어 수용된 곳이다.


1945년 일본포로군 교도소 라는 의미의 탐 무앙 포우 캠프는 농플라툭 지역에서 39Km, 칸차나 부리에서는 11Km, 지점에 위치한 교도소 로써 버마 랑군과 탄부자야와는 375Km 남쪽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영국, 미국, 독일, 호주 등의 연합군 포로가 철도 건설에 동원될 당시 잦은 사망과 사고가 발생, 치료하는 병원시설등으로 주로 이용 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당연히 현장외에도 이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매일 매일 죽어 나갔을 터. 현재는 이곳에 관한 건물의 흔적등은 찾아 보기 힘들며 당시에 수용소가 있었던 위치만 표기되고 있다.


1945년 일본군의 패망이후, 퇴각하던 일본군들은 대부분 자결을 선택하였고, 아비규환 속에서 기적처럼 살아 남았다 해도, 연합군의 포로로 잡히는 신세가 된 이들은 강제 동원된 조선인 감시인, 혹은 속국에서 강제 징집된 병사나 위안부 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포로로 잡히는게 다행이었을 것이다. 퇴각하는 일본군들은 자결 뿐 아니라, 무자비한 강제 사살을 자행한다. 이는 일본 상부의 지시에 의했던 것으로 역사적 사료들이 속속 증거물로 발견되어 지고 있다고 한다. 이때 대부분의 위안부 조선처녀들이 사살당했을 지도 모른다.

 

자결하는 일본군. 그들에게 사살되었던 조선인 위안부 들과 조선인 감시원들, 아비규환 속에서 기적처럼 살아 남았으나 연합군 포로로 잡힌 이들 그들에겐 지옥 같은 시간들이었을 것이다.

 

최근 공개된 태국 정부 문건에 의하면, [아유타야 포로 수용소]의 조선인 위안부 목록만 500여명인데 중복된 기재를 고려해 볼 때 463명의 인원이 확인 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여기서 언급 되는 [아유타야] 지역에서는 세계 2차 대전 관련 포로 수용 시설에 대한 근거 자료거 전무 하다.


때문에, 500여명의 조선인 위안부의 현존이나 이후 행적등은 추적이 불가능할 정도이다.


https://www.google.co.th/…/data=!3m1!4b1!4m20!4m19!1m5!1m1!…
(1-콰이강의 다리 건설현장, 2-당시 위안소 위치, 3-포로 수용소 병원 시설)

 

당시의 아비규환에서 기적처럼 살아 남은 여성들이 바로 노수복 씨 같은 분들이셨을 텐데, 이제 차츰 그녀들이 하나 둘 생을 마감함으로써 생존자는 손에 꼽을 정도라 한다.


종전이후 일본은 당시 부터 현재 까지도 꾸준히 위안부 관련 흔적을 지우려고 무던히도 애써오고 있지 않은가? 종전 직후 위안부들을 즉시 집단 사살하였다 거나 그나마 생존한 극 소수의 위안부 여자들을 간호조무병으로 둔갑 시켜온 일본 정부 탓에, 전쟁 당시 연합군 관련 문건 기록에 따르자면, 1,500여명의 태국에 상주하였다던 조선인 위안부는 종전 이후에는 어디로 사라진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2011년 마지막 태국 위안부 이신 노수복 할머니를 마지막으로 현재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아유타야 포로 수용소]도 [1,500명의 조선인 위안부]도 모두!!

 

물론 엄밀히 말해 노수복 할머니도 태국에서 위안부로 사셨던 것이 아니라, 싱가폴과 말레이시아에서 위안부 생활을 해 오신 것으로 증언하셨고. 종전 후 피신해 정착한 곳이 태국이었다.

 

그렇다면, 1,500여명의 조선 위안부로 기록되었던 태국과 버마의 위안부에 관한 실존 인물과 장소가, 현재는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이 된다. 이유는 무엇인가?

 

집단 사살, 2차대전 실존했던 위안부 근거자료 말살 정책, 그리고 실존 위안부 들의 부끄러운 과거 감추기 등등은 오랜 세월 동안 그녀들이 존재를 지워 나갔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자주 거론되는 [아유타야 포로 수용소]는 그야말로 1943년부터 1946년 까지 파악된 조선인 위안부 500여명의 리스트만 남긴 채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위안부의 존재에 대해 무지 했던 연합군은 패전후에도 교묘히 끼어들어 [위안부 근거자료 삭제]작업을 은밀히 자행해온 일본당국에 의해 [위안부]가 아닌 [간호 조무사]로 인식되었을 것이라 한다.

 

혹은 [자원하여 매춘을 하러 온] 조선인 여성들로 인식하고 있다고 한다. [강제 징집된 위안부]에서 [자원한 간호 조무사]로 서류상 신분 상승(?)된 그녀들. 여전히 깐차나부리의 원혼이 되어 현재 까지도 허다한 괴담이 속출하고 있다.


( 태국의 유명 엔터테인먼트 사이트인 카푹의 태국의 귀신 출몰 10곳 사이트 http://hilight.kapook.com/view/109445 )


최근에는 한국의 케이블 채널에서 이러한 내용을 소잿거리로 제작한 방송이 있었는데, 시쳇말로 주작의 냄새가 강한 한 케이블 채널의 심령 프로그램이 방영될 정도이다.

 

이후 태국의 칸차나부리 에서는 자주 살해 된 흔적의 유골들이 발견되고 , 이와 관련한 괴담과 흉흉한 소문들이 팽배해 지는데, 태국의 현대의 샤머니즘과 귀신 관련 현상 들이 , 강제 살해된 조선의 위안부 원혼들과 전혀 무관할 수는 없을 듯 하다.

 

어쩌면, 외세의 침략과 내전으로 오랜 역사 속에서 시달려온 태국 국민들에겐 세계 2차대전으로 인한 엄청난 수의 파랑(서양인 외국인)들의 사망과 아시아 매춘 처녀들의 집단 사망 등은 일종의 공포였을 것이며, 이는 현재 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듯하다.

 

오늘날의 태국에서는 원한을 품고 죽은 허다한 귀신들이 곳곳에 널려 있으며, 특히 귀신의 존재가 인정되는 장소로 제일 먼저 칸차나부리를 꼽기를 서슴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 2차대전의 조선인 위안부 처녀들이 안타깝고 처절하게 죽어나간 역사적 사실 보다는, 집단 매춘 여성 살해 장소 쯤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태국과 한국 간에는 이토록 처절하고 잔인한 전쟁으로 희생된 억울한 원혼들이 구천을 떠 돌 테지만 , 너무나도 오랜 시간 동안 태국도 한국도 그녀들의 지옥같던 아비규환을 기억해 내려 하고 있지 않다.

어쩌면, 그래서 칸차나 부리의 흉흉한 괴담은 더욱 자주 출몰되고 있을지도...

 

유튜브 영상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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